정년식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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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ppyYJ 댓글 0 comments 조회 5,048 views 작성일 2025.08.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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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식에 참석해 공식적으로 퇴임을 했다.
정년교원 대표로 인사를 하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하고 앞으로 멋진 인생 2.0을 그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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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유홍림 총장님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뜻깊은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동료 교수님들과 이 순간을 나누게 되어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보낸 32년은 제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마치 긴 여정을 마친 여행자가 정든 짐을 내려놓는 듯한 홀가분함과 함께,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수많은 소중한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학생들, 존경하는 동료 교수님들,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신 행정 선생님들,
그리고 캠퍼스 곳곳에서 마주쳤던 이름 모를 모든 인연까지.
그 하나하나가 저를 단단하게 만들고,
깊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소중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강의실에서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지적 호기심을 키워나갔고,
연구실에서는 '왜 그럴까?'라는 질문 하나에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씨름했습니다.
연구란 결국 성실함과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궁금한 것'에 대한 깊은 몰입의 싸움이라는 믿음으로,
제가 던진 질문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그중에서도 '고객'이라는 주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유학 시절의 잊지 못할 경험이 있습니다.
스탠퍼드에서 유학하던 어느 날, 시각장애가 있는 분과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
"낚시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못 해요. 저한테야 눈먼 고기밖에 안 잡히겠죠"라고 말했지요.
그 말을 끝내자마자 '아차!' 싶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께 그런 농담을 하다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남의 관점에서 말해야 한다는 것.
그 순간부터 제 삶과 학문은 달라졌습니다.
'고객'이란 단지 소비자가 아니라, 내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라는 믿음.
학생, 동료, 이웃, 가족 모두가 나의 고객이라는 생각이 제 삶을 이끌었습니다.

얼마 전 서울대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졸업 후 계획을 묻자 대부분 "한국에 남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생활이 편리하고 서비스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제 친구들도 매년 한국을 찾아 한국 서비스의 우수성에 감탄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25년 전 시작된 KS-SQI, 한국서비스품질지수를 떠올립니다.
 한 식사 자리에서 나눈 짧은 대화가 계기가 되어 이 지표를 개발했고,
이후 서비스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매년 수많은 이용자의 평가를 통해 서비스 수준을 측정하고 개선해온 결과,
오늘날 한국 서비스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작은 지표가 우리 사회의 서비스 품질 향상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과 더불어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연구가 삶을 바꾸고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교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사실,
화려한 상장이나 트로피를 받을 때보다는 '멘붕'에 빠져 힘들어하던 학생들과 마주 앉아 함께 고민하던 순간들입니다.
유학 중 논문 자격시험에 떨어져 낙담하던 한 학생이 결국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미국에서 당당히 교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쁜 순간보다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스승의 역할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저는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자만은 하지 않되, 자긍심을 가져라.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을 익혀라.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라."
이 말들은 사실, 저 자신에게도 평생 되새겨야 할 삶의 지침이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적 공동체인 서울대학교의 일원으로 살아온 것은 제게 더없는 영광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서울대는 단지 학문의 전당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미래를 준비하고 바람직한 가치를 실현해가는 데 있어 중심이 되어온 배움의 공동체입니다.

서울대는 이 나라가 오랜 시간 동안 애정을 담아 키워낸 귀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더 넓고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기 위해서는,
지식과 실천, 진리와 공감이 함께 어우러져 자라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서울대가 단지 머리로만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뜨겁게 질문하고 손으로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살아 숨 쉬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이 정든 배움의 터전을 떠나,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다시 질문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미뤄두었던 물음들을 꺼내어 천천히 들여다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 그것이 제게 남은 다음 여정입니다.

오늘 함께 정년을 맞는 동료 교수님들께 깊은 존경과 따뜻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오랜 시간과 뜨거운 열정이 이 교정에 좋은 흔적으로 남아, 후학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저희 곁을 지켜주신 가족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학문적 열정을 이해하고 때로는 소홀했던 저희를 끝까지 응원해주신 배우자와 자녀, 부모님들 덕분에 이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학부모'처럼 저희를 품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길의 끝이 또 다른 시작임을 믿으며,
저는 이제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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