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씬 스틸러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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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ppyYJ 댓글 0 comments 조회 1,581 views 작성일 2026.02.10 11:50본문
처음부터 무대 중앙에 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우리는 대개 누군가의 방식을 배우고 보이지 않는 일을 처리하며 자기 자리를 만드는 '조연'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이 우리를 무대 한가운데로 불러낸다. 결정권이 생기고 책임이 늘어나며,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주연의 계절'이 찾아오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시선이 내 말 한마디에 모이고, 대학교 연구실에서 학문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오롯이 내 몫이던 시절 말이다.
지금의 나는 정년 퇴임한 교수다. 비록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은 찍지 않지만, 학문이란 게 참 묘해서 퇴근이 따로 없다. 여전히 연구를 하고, 저술 활동을 이어가며 때때로 강단에도 선다. 다만 무대의 구조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학과의 회의실이나 행정의 일정표에서 한 걸음 비켜났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내려왔다. 대신 더 오래 남는 자리, 즉 묻고 읽고 쓰는 본질적인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조명이 비추던 공간을 지나 조용한 사색의 시간으로 들어온 셈이다.
돌이켜보니 교수라는 직업은 참 아이러니하다. 주연으로 오래 남아있으려 할수록 오히려 실패에 가까워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잘하는 것도, 연구를 잘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기량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초임 시절에는 나 역시 스승님과 선배들의 프로젝트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논문을 읽으며 학문의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몸으로 배웠던 조연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 강의가 나만의 색을 갖게 되고, 연구실 구성원들이 내 선택에 기대어 움직일 때 비로소 내가 주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배움은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내어줄 때 완성되었다.
한때는 내가 말을 많이 해야 수업이 풍성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강의는 내가 설명을 완성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언어로 이해를 완성해가는 곳이었다.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장 앞에서 달릴 때보다, 제자가 비틀거리면서도 자기 연구의 방향을 스스로 세우는 순간이 훨씬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발표를 앞두고 "교수님, 이게 맞을까요?"라며 정답을 구하던 제자가 어느 날 "이렇게 가보겠습니다"라고 자기 확신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교수의 역할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성숙한 조연이었던 것이다.
정년 퇴임은 그런 역할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의식과도 같다. 주연의 무게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화면 분량이 줄어드는 감각은 생각보다 날카롭고 시릴 수 있다. 이름이 명단에서 사라지는 서운함이나, 내 판단이 더 이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으로 취급받는 낯섦을 나 역시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역할의 비중은 작아져도, 존재의 크기는 작아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중심에서 물러나는 것이 곧 쇠락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내가 직접 빛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빛날 수 있도록 무대를 정리하는 능력이 '진짜 실력'이 된다.
영화에서는 이런 인물을 '씬 스틸러'라고 부른다. 억지로 눈에 띄려 애쓰는 게 아니라, 주연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장면 전체의 온도를 지키는 사람이다. 퇴임 이후 나는 오히려 그 감각을 더 자주 확인한다. 공식 직함이 줄어든 자리에서 선배 연구자로서 조언을 건네고 원고를 다듬어주는 시간이 늘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과정이 내 안의 학문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누가 학회장이 되고 누가 큰 자리를 맡는지가 뉴스처럼 들렸다면, 이제는 내 앞에서 쭈뼛거리던 제자가 단상에 서서 조직을 이끄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 전성기를 다시 증명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 내가 만든 것은 논문 한 편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이름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의 한 구간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런 깨달음은 가정이라는 무대에서도 반복되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여행 하나를 가도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감독이자 주연이었다. 항공권부터 숙소, 렌터카 예약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녀가 여행 준비를 도맡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쥐고 있던 키를 건네준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택이 조금 엇나가도 그 시행착오가 자녀의 능력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부모의 역할 또한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주는 주연에서, 실패를 견딜 수 있게 곁을 지키는 조연으로 바뀌어간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 나이 듦이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서글픈 사건이 아니라, 기꺼이 조연으로 자리를 옮길 줄 아는 우아한 능력이다. 다음 세대에게 앞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내 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내 역할을 더 가치 있게 바꾸는 일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주연의 조명만을 탐한다면 불행해지겠지만, 노련한 조연이 되기로 마음먹는 순간 삶은 더 깊어진다. 뒤로 물러나서가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기에 그 뒤태가 아름다운 법이다. 나는 이제 무대를 독점하기보다 누군가가 자기 무대를 더 넓게 펼칠 수 있도록 돕는 '멋진 조연'으로 남고 싶다. 주연의 환호는 짧지만, 장면 전체를 살려낸 조연의 행복은 길고 깊게 이어질 테니까.
지금의 나는 정년 퇴임한 교수다. 비록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은 찍지 않지만, 학문이란 게 참 묘해서 퇴근이 따로 없다. 여전히 연구를 하고, 저술 활동을 이어가며 때때로 강단에도 선다. 다만 무대의 구조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학과의 회의실이나 행정의 일정표에서 한 걸음 비켜났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내려왔다. 대신 더 오래 남는 자리, 즉 묻고 읽고 쓰는 본질적인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조명이 비추던 공간을 지나 조용한 사색의 시간으로 들어온 셈이다.
돌이켜보니 교수라는 직업은 참 아이러니하다. 주연으로 오래 남아있으려 할수록 오히려 실패에 가까워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잘하는 것도, 연구를 잘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기량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초임 시절에는 나 역시 스승님과 선배들의 프로젝트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논문을 읽으며 학문의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몸으로 배웠던 조연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 강의가 나만의 색을 갖게 되고, 연구실 구성원들이 내 선택에 기대어 움직일 때 비로소 내가 주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배움은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내어줄 때 완성되었다.
한때는 내가 말을 많이 해야 수업이 풍성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강의는 내가 설명을 완성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언어로 이해를 완성해가는 곳이었다.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장 앞에서 달릴 때보다, 제자가 비틀거리면서도 자기 연구의 방향을 스스로 세우는 순간이 훨씬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발표를 앞두고 "교수님, 이게 맞을까요?"라며 정답을 구하던 제자가 어느 날 "이렇게 가보겠습니다"라고 자기 확신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교수의 역할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성숙한 조연이었던 것이다.
정년 퇴임은 그런 역할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의식과도 같다. 주연의 무게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화면 분량이 줄어드는 감각은 생각보다 날카롭고 시릴 수 있다. 이름이 명단에서 사라지는 서운함이나, 내 판단이 더 이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으로 취급받는 낯섦을 나 역시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역할의 비중은 작아져도, 존재의 크기는 작아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중심에서 물러나는 것이 곧 쇠락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내가 직접 빛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빛날 수 있도록 무대를 정리하는 능력이 '진짜 실력'이 된다.
영화에서는 이런 인물을 '씬 스틸러'라고 부른다. 억지로 눈에 띄려 애쓰는 게 아니라, 주연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장면 전체의 온도를 지키는 사람이다. 퇴임 이후 나는 오히려 그 감각을 더 자주 확인한다. 공식 직함이 줄어든 자리에서 선배 연구자로서 조언을 건네고 원고를 다듬어주는 시간이 늘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과정이 내 안의 학문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누가 학회장이 되고 누가 큰 자리를 맡는지가 뉴스처럼 들렸다면, 이제는 내 앞에서 쭈뼛거리던 제자가 단상에 서서 조직을 이끄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 전성기를 다시 증명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 내가 만든 것은 논문 한 편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이름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의 한 구간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런 깨달음은 가정이라는 무대에서도 반복되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여행 하나를 가도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감독이자 주연이었다. 항공권부터 숙소, 렌터카 예약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녀가 여행 준비를 도맡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쥐고 있던 키를 건네준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택이 조금 엇나가도 그 시행착오가 자녀의 능력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부모의 역할 또한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주는 주연에서, 실패를 견딜 수 있게 곁을 지키는 조연으로 바뀌어간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 나이 듦이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서글픈 사건이 아니라, 기꺼이 조연으로 자리를 옮길 줄 아는 우아한 능력이다. 다음 세대에게 앞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내 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내 역할을 더 가치 있게 바꾸는 일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주연의 조명만을 탐한다면 불행해지겠지만, 노련한 조연이 되기로 마음먹는 순간 삶은 더 깊어진다. 뒤로 물러나서가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기에 그 뒤태가 아름다운 법이다. 나는 이제 무대를 독점하기보다 누군가가 자기 무대를 더 넓게 펼칠 수 있도록 돕는 '멋진 조연'으로 남고 싶다. 주연의 환호는 짧지만, 장면 전체를 살려낸 조연의 행복은 길고 깊게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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