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의 잡지, 여행지에서 다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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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ppyYJ 댓글 0 comments 조회 1,136 views 작성일 2026.03.04 07:21본문
여행 중에 우연히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라는 간판을 봤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뿌리깊은나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그 잡지를 몇 번 펼쳐 본 기억이 있다. 내용은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데, 느낌은 또렷하다. 단정한데 묘하게 자유롭고, ‘한국적인데 촌스럽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건 기존 잡지랑 완전히 다른데?” 하는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그 시절 내 주변에서는 뿌리깊은나무를 두고 은근히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저건 의식 있는 사람들이 보는 잡지야.” 나도 그 분위기에 살짝 기대어 잡지를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발행인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잡지는 작품처럼 보였고, 작품은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이번 박물관 방문이 더 강렬했다. 그 잡지 뒤에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한창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대학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다시 편집’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 충격이 “세상에 이런 잡지가 있었나”였다면, 이번 충격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였다.
한창기 선생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브리태니카 세일즈맨으로 뛰어들어 기록을 세우고 지사장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이 났다. 요즘 말로 하면 ‘커리어가 꺾인’ 게 아니라 ‘커리어를 꺾어서 만든’ 사람이다. 남들이 ‘정해진 길’이라고 생각하는 레일을 그대로 타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성과로 증명하는 길을 택했다. 세일즈를 해본 사람은 안다. 그건 말을 잘하는 일이 아니라, 거절을 견디고, 사람을 읽고, 시장의 온도를 재는 일이다. 나는 그 경험이 훗날 그의 잡지 기획을 가능하게 했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보게 되었다. “독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디서 지루해지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을 테니까.
뿌리깊은나무가 놀라운 건, ‘좋은 글을 모은 잡지’여서만이 아니다. 그 시절 잡지 업계에는 지금 들으면 황당한 금기들이 통념처럼 떠돌았다고 한다. 제목이 네 글자를 넘으면 망한다, 제목을 한글로 쓰면 망한다, 가로쓰기를 하면 망한다, 잡지가 크면 망한다, 두툼하지 않으면 망한다, 한글만 쓰면 망한다…. 참 별별 ‘망한다’가 다 붙어 있다. 그런데 한창기 선생은 그 금기들을 웬만하면 다 깨 버렸다. 한글 전용, 가로쓰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 심지어 원고를 받아 더 쉬운 말로 고쳐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 이 사람은 독자를 진짜로 존중했구나” 싶었다. 보통은 어렵게 써야 있어 보인다고 믿기 쉬운데, 그는 반대로 ‘읽히게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잡았다.
대학 시절 내가 느꼈던 “의식 있는 잡지”라는 인상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실 그 잡지는 의식 있는 사람만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의식을 조금 더 넓혀 주는 잡지였던 것 같다. 어려운 말을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말과 삶, 민중의 문화와 취향을 당당하게 끌어올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배제’가 아니라 ‘초대’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게 신선했다. 그리고 그 신선함이 오래 남았다.
박물관에서 또 하나 놀랐던 건, 그의 열정이 잡지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뿌리깊은나무가 폐간된 뒤에도 그는 다시 샘이깊은물을 창간했고, 한글의 글꼴과 쓰임을 새롭게 다듬는 작업을 이어갔다. 판소리 음반을 만들고, 민중자서전을 내고, 토박이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했다. ‘새로움’이 목적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만드는 일이 목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수집 이야기다. 한창기 선생이 모은 유물이 6,500점이나 된다고 한다. 숫자만 들어도 감이 온다. 이건 취미가 아니라 집념이다.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냥 ‘좋다’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찾아다니고, 사고, 기록하고, 남겼다는 뜻이니까. 박물관은 그 ‘남김’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나는 전시를 보며 “한 사람의 취향이 이렇게까지 세계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박물관을 나오며 나는 문득, 우리가 너무 쉽게 “그건 망한다”는 말을 믿고 사는 건 아닌가 싶었다. 업계의 금기, 세상의 통념, 스스로에게 거는 제한들. 한창기 선생은 그런 문장들 앞에서 겁먹기보다, “그래도 해보자”고 선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잡지를 바꾸고, 독서를 바꾸고, 결국 한 도시의 박물관까지 만들었다.
대학 시절의 나는 잡지 한 권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번 여행에서는 그 잡지를 만든 사람을 알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여행의 우연이란 가끔 이렇게, 오래된 기억에 새 의미를 덧붙여 준다. 뿌리깊은나무라는 이름처럼, 깊은 뿌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버티고, 버티어야 가지가 뻗는다. 한창기 선생의 이야기는 내게 그런 방식으로 남았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오히려 더 과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망한다’는 말이 가장 그럴듯할 때일수록, 한 번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그 시절 내 주변에서는 뿌리깊은나무를 두고 은근히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저건 의식 있는 사람들이 보는 잡지야.” 나도 그 분위기에 살짝 기대어 잡지를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발행인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잡지는 작품처럼 보였고, 작품은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이번 박물관 방문이 더 강렬했다. 그 잡지 뒤에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한창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대학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다시 편집’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 충격이 “세상에 이런 잡지가 있었나”였다면, 이번 충격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였다.
한창기 선생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브리태니카 세일즈맨으로 뛰어들어 기록을 세우고 지사장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이 났다. 요즘 말로 하면 ‘커리어가 꺾인’ 게 아니라 ‘커리어를 꺾어서 만든’ 사람이다. 남들이 ‘정해진 길’이라고 생각하는 레일을 그대로 타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성과로 증명하는 길을 택했다. 세일즈를 해본 사람은 안다. 그건 말을 잘하는 일이 아니라, 거절을 견디고, 사람을 읽고, 시장의 온도를 재는 일이다. 나는 그 경험이 훗날 그의 잡지 기획을 가능하게 했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보게 되었다. “독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디서 지루해지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을 테니까.
뿌리깊은나무가 놀라운 건, ‘좋은 글을 모은 잡지’여서만이 아니다. 그 시절 잡지 업계에는 지금 들으면 황당한 금기들이 통념처럼 떠돌았다고 한다. 제목이 네 글자를 넘으면 망한다, 제목을 한글로 쓰면 망한다, 가로쓰기를 하면 망한다, 잡지가 크면 망한다, 두툼하지 않으면 망한다, 한글만 쓰면 망한다…. 참 별별 ‘망한다’가 다 붙어 있다. 그런데 한창기 선생은 그 금기들을 웬만하면 다 깨 버렸다. 한글 전용, 가로쓰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 심지어 원고를 받아 더 쉬운 말로 고쳐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 이 사람은 독자를 진짜로 존중했구나” 싶었다. 보통은 어렵게 써야 있어 보인다고 믿기 쉬운데, 그는 반대로 ‘읽히게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잡았다.
대학 시절 내가 느꼈던 “의식 있는 잡지”라는 인상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실 그 잡지는 의식 있는 사람만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의식을 조금 더 넓혀 주는 잡지였던 것 같다. 어려운 말을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말과 삶, 민중의 문화와 취향을 당당하게 끌어올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배제’가 아니라 ‘초대’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게 신선했다. 그리고 그 신선함이 오래 남았다.
박물관에서 또 하나 놀랐던 건, 그의 열정이 잡지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뿌리깊은나무가 폐간된 뒤에도 그는 다시 샘이깊은물을 창간했고, 한글의 글꼴과 쓰임을 새롭게 다듬는 작업을 이어갔다. 판소리 음반을 만들고, 민중자서전을 내고, 토박이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했다. ‘새로움’이 목적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만드는 일이 목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수집 이야기다. 한창기 선생이 모은 유물이 6,500점이나 된다고 한다. 숫자만 들어도 감이 온다. 이건 취미가 아니라 집념이다.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냥 ‘좋다’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찾아다니고, 사고, 기록하고, 남겼다는 뜻이니까. 박물관은 그 ‘남김’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나는 전시를 보며 “한 사람의 취향이 이렇게까지 세계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박물관을 나오며 나는 문득, 우리가 너무 쉽게 “그건 망한다”는 말을 믿고 사는 건 아닌가 싶었다. 업계의 금기, 세상의 통념, 스스로에게 거는 제한들. 한창기 선생은 그런 문장들 앞에서 겁먹기보다, “그래도 해보자”고 선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잡지를 바꾸고, 독서를 바꾸고, 결국 한 도시의 박물관까지 만들었다.
대학 시절의 나는 잡지 한 권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번 여행에서는 그 잡지를 만든 사람을 알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여행의 우연이란 가끔 이렇게, 오래된 기억에 새 의미를 덧붙여 준다. 뿌리깊은나무라는 이름처럼, 깊은 뿌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버티고, 버티어야 가지가 뻗는다. 한창기 선생의 이야기는 내게 그런 방식으로 남았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오히려 더 과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망한다’는 말이 가장 그럴듯할 때일수록, 한 번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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